정답과 해설
- 다윈이 약 5년간 항해하며 갈라파고스 제도 등을 관찰한 영국 해군 측량선의 이름은? — 정답: 비글호. 다윈은 스물두 살에 비글호에 박물학자로 승선해 1831년부터 1836년까지 남아메리카와 태평양을 돌았습니다. 갈라파고스의 섬마다 부리 모양이 다른 새들과 거북을 관찰한 경험이 훗날 자연선택 개념의 재료가 됐습니다. 다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진화론을 발표한 것은 아니고, 「종의 기원」이 나오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엔데버호는 제임스 쿡의 배, 메이플라워호는 청교도 이주선입니다.
- 뉴턴이 만유인력과 운동 법칙을 정리해 발표한 저서는? — 정답: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1687년에 나온 「프린키피아」에서 뉴턴은 운동의 세 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을 수학적으로 정리해, 땅 위의 물체와 하늘의 행성이 같은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광학」도 그의 저작이지만 빛과 색을 다룬 다른 책입니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코페르니쿠스,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갈릴레이의 책입니다.
- 아인슈타인이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공로는? — 정답: 광전효과 법칙의 발견. 노벨상 수상 사유에는 상대성이론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당시 상대성이론은 검증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있었고, 대신 빛이 금속에 닿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를 빛알(광양자) 개념으로 설명한 업적이 인정받았습니다. 이 연구는 양자역학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원자폭탄을 만들지 않았고,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에 서명한 일을 뒷날 후회했다고 밝혔습니다.
- 마리 퀴리가 받은 두 번의 노벨상 분야는? — 정답: 물리학상과 화학상. 1903년에 방사능 연구로 물리학상을, 1911년에 라듐과 폴로늄 발견 및 라듐 분리로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가 유일합니다. 1903년 수상은 남편 피에르 퀴리, 앙리 베크렐과의 공동 수상이었습니다. 딸 이렌 졸리오퀴리도 훗날 화학상을 받아 모녀가 나란히 수상자가 됐습니다.
- 에디슨과 백열전구의 관계로 맞는 것은? — 정답: 이전에도 전구는 있었고, 오래 켜지는 전구를 만들어 실용화·보급했다. 전기로 빛을 내는 장치는 에디슨 이전에도 여럿 있었지만 금방 타 버리거나 너무 비싸 쓸 수 없었습니다. 에디슨 연구소는 수많은 재료를 시험해 오래 견디는 탄소 필라멘트를 찾아냈고, 전구뿐 아니라 발전소와 배선까지 아우르는 전기 공급 체계를 함께 만들어 보급에 성공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조지프 스완도 독자적으로 전구를 개발해 나중에 두 사람이 회사를 합쳤습니다.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라 "쓸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 앨런 튜링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맡았던 일은? — 정답: 독일군 암호 에니그마의 해독. 튜링은 영국 블레츨리 파크에서 독일군의 암호기 에니그마를 푸는 일을 맡아, 가능한 설정을 빠르게 걸러 내는 해독 기계 봄브를 설계했습니다. 이 작업이 전쟁을 상당 기간 앞당겨 끝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전쟁 전에 발표한 계산 가능성 이론과 훗날의 튜링 테스트로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놓았지만, 동성애를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1954년 세상을 떠났고 2013년에야 영국 정부의 사면을 받았습니다.
-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의 야전병원에서 사망률을 크게 낮추는 데 활용한 것은? — 정답: 사망 원인을 정리한 통계와 도표를 근거로 한 위생 개선. 나이팅게일은 병사들이 전투 부상보다 감염병으로 훨씬 많이 죽는다는 사실을 자료로 확인하고, 이를 한눈에 보이는 도표로 만들어 정부를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병원의 환기·급수·배수와 위생이 개선되며 사망률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는 영국 왕립통계학회의 첫 여성 회원이 됐고, "등불을 든 여인"이라는 별칭 뒤에는 이런 통계 작업이 있었습니다. 항생제는 그보다 훨씬 뒤인 20세기의 일입니다.
- 간디가 1930년에 벌인 "소금 행진"의 목적은? — 정답: 영국이 독점한 소금 생산·판매에 맞서 직접 소금을 만들어 법을 어기려고. 당시 인도인은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 수 없었고 영국이 매긴 세금이 붙은 소금만 사야 했습니다. 간디는 지지자들과 함께 바닷가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가 직접 소금을 만들어 법을 어겼습니다. 폭력을 쓰지 않으면서 부당한 법을 공개적으로 어기는 비폭력 불복종의 대표적인 사례로, 수만 명이 뒤따라 체포되며 독립운동의 큰 분기점이 됐습니다.
-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다 감옥에서 보낸 기간은? — 정답: 약 27년. 만델라는 1962년 체포돼 27년가량을 갇혀 지냈고, 상당 기간을 로벤섬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1990년 석방된 뒤에는 보복 대신 화해를 앞세워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이끌었고,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1994년 모든 인종이 참여한 첫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한 번의 임기만 마치고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남긴 유명한 구절은? — 정답: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1863년 게티즈버그 전투 희생자를 기리는 자리에서 링컨이 한 이 연설은 2분 남짓에 불과했지만 민주주의를 압축한 문장으로 남았습니다. 같은 해 그는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100년 뒤 마틴 루서 킹의 연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카이사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패트릭 헨리의 말입니다.
-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완성해 초연할 무렵의 청력 상태는? — 정답: 거의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베토벤은 20대 후반부터 귀가 나빠지기 시작해 30대에는 대화를 필담으로 대신해야 했고, 1824년 9번 교향곡을 초연할 때는 거의 듣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초연이 끝난 뒤 객석의 환호를 알아채지 못해 단원이 그를 돌려세워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뒤에도 후기 현악사중주와 「장엄미사」 같은 대작을 계속 써 냈습니다.
- 반 고흐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그림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 — 정답: 거의 팔리지 않아 동생 테오의 지원으로 생활했다. 반 고흐는 10년 남짓한 기간에 유화만 수백 점을 그렸지만 살아서는 거의 팔지 못했고, 화상으로 일하던 동생 테오가 물감값과 생활비를 대 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수백 통이 남아 그의 생각을 지금까지 전해 줍니다. 그림값이 치솟은 것은 세상을 떠난 뒤의 일로, 지금은 「해바라기」 연작을 비롯한 작품들이 미술사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듭니다.
바로잡을 것 세 가지
에디슨은 전구를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라 오래 켜지는 전구를 만들어 보급한 사람이고, 아인슈타인의 노벨상은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광전효과에 주어졌으며, 반 고흐는 살아서는 그림을 거의 팔지 못했습니다. 위인의 이야기는 "혼자 단번에 해냈다"는 모양으로 다듬어지며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앞선 연구와 동료들의 작업이 함께 있었습니다.
출제 기준
노벨재단의 수상 기록, 각 인물 기념관과 관련 학회의 공개 자료, 널리 인정되는 평전을 근거로 했습니다. 출처에 따라 연도나 수치가 갈리는 항목은 문제에서 제외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왜 위인의 이야기는 실제와 다르게 퍼지나요?
이야기는 기억하기 좋은 형태로 다듬어지며 전해집니다. "혼자서 단번에 해냈다"는 구조가 가장 잘 기억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오래 쌓아 올린 과정은 지워지기 쉽습니다. 전구, 진화론, 상대성이론 모두 앞선 연구와 동료들의 작업 위에서 나온 결과라, 그 과정을 함께 보면 업적의 크기가 오히려 더 분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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