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역사 퀴즈 12문제 - 1896년 아테네 근대 올림픽, 쿠베르탱, 마라톤 42.195킬로미터와 1908년 런던, 1930년 첫 월드컵,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1983년 프로축구, 네이스미스와 농구, 배구의 탄생, 2000년 시드니 태권도, 1936년 손기정, 1998년 박세리, 2010년 밴쿠버 김연아

올림픽이 부활한 해, 마라톤 거리가 확정된 해,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 연도 하나가 어긋나면 이야기가 통째로 달라집니다.

총 12문제, 약 3분 소요. 널리 확인된 기록을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결과 아래 안내에 전체 정답과 해설이 있습니다.

정답과 해설

  1.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연도와 도시는? — 정답: 1896년 그리스 아테네. 근대 올림픽의 첫 대회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습니다. 고대 올림픽이 열리던 땅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상징을 담은 선택이었습니다. 참가 규모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작아 열 몇 개 나라의 남자 선수들만 참가했고 종목도 육상과 체조, 펜싱, 사격, 수영 등으로 제한적이었습니다. 여성 선수가 참가한 것은 1900년 파리 대회부터입니다. 이후 파리, 세인트루이스, 런던으로 이어졌는데 초기 대회들은 만국박람회와 겹쳐 열려 일정이 몇 달씩 늘어지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1896년 아테네 대회의 마라톤에서는 그리스의 스피리돈 루이스가 우승해 개최국에 큰 의미를 남겼습니다.
  2. 근대 올림픽 부활을 주도한 인물은? — 정답: 피에르 드 쿠베르탱. 프랑스의 교육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체육 교육에 관심을 두고 국제적인 종합 경기 대회를 되살리자고 제안했으며, 1894년 파리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첫 대회 개최가 결정됐습니다. 흔히 인용되는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취지의 말도 그와 연결돼 전해집니다. 나머지 인물들도 스포츠 역사에서 각자 자리가 있습니다.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농구를, 윌리엄 모건은 배구를 고안했고, 쥘 리메는 국제축구연맹 회장으로서 월드컵 창설을 이끌어 초기 우승 트로피에 그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네 사람을 서로 바꿔 놓은 문제가 자주 나오는 이유입니다.
  3. 마라톤 거리 42.195킬로미터가 처음 사용된 올림픽은? — 정답: 1908년 런던 대회. 초기 올림픽의 마라톤 거리는 대회마다 조금씩 달라 40킬로미터 안팎에서 오갔습니다. 지금의 42.195킬로미터가 처음 쓰인 것은 1908년 런던 대회로, 출발과 도착 지점을 정하는 과정에서 나온 거리였습니다. 이 값이 곧바로 표준이 된 것은 아니고 이후 몇 대회를 더 거친 뒤 국제 육상 기구가 공식 거리로 확정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 1908년 런던 대회의 마라톤은 결승선 직전 쓰러진 선수를 관계자들이 부축해 들어오게 했다가 실격 처리된 장면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라톤이라는 종목 이름 자체는 고대 그리스의 마라톤 전투 전령 이야기에서 왔지만, 그 이야기와 42.195라는 숫자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4. 제1회 FIFA 월드컵이 열린 연도와 개최국은? — 정답: 1930년 우루과이. 첫 월드컵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렸고 개최국 우루과이가 우승했습니다. 당시 우루과이는 올림픽 축구에서 연달아 정상에 오른 강호였고 독립 100주년을 맞아 대회를 유치했습니다. 유럽에서 남미까지 배로 몇 주가 걸리던 시절이라 참가국이 열세 개에 그쳤고 유럽에서는 소수만 건너갔습니다. 두 번째 대회는 1934년 이탈리아, 세 번째는 1938년 프랑스에서 열렸으며 이후 전쟁으로 두 차례 대회가 열리지 못하다가 1950년 브라질에서 재개됐습니다. 창설을 이끈 쥘 리메의 이름을 딴 트로피는 브라질이 세 번째 우승을 하며 영구 보유하게 돼, 현재 쓰이는 트로피는 1974년부터의 새 트로피입니다.
  5.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연도는? — 정답: 1982년.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여섯 개 구단으로 출범했습니다. 개막전에서 나온 연장 끝내기 만루 홈런이 지금도 회자되고, 첫 시즌에 22연승과 시즌 최고 승률 같은 기록이 나와 초창기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후 구단 수가 늘고 연고지가 재편되며 리그 규모가 커졌고, 관중 규모에서 국내 프로 스포츠 가운데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참고로 야구 자체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개화기 무렵이고, 프로 출범 이전에도 실업 야구와 고교 야구가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프로 출범 연도를 1988년 서울올림픽과 묶어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다른 해입니다.
  6. 한국 프로축구 리그가 시작된 연도는? — 정답: 1983년. 한국의 프로축구 리그는 1983년에 시작됐습니다. 출범 당시에는 프로 팀과 실업 팀이 함께 참가하는 형태였고 명칭도 지금과 달랐는데, 이후 참가 팀이 늘고 완전한 프로 리그로 정착하면서 현재의 K리그로 이어졌습니다. 프로야구보다 한 해 뒤라는 점이 자주 헷갈리는 지점입니다. 초기에는 특정 연고지 없이 전국을 순회하며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었다가 점차 지역 연고제가 자리 잡았고, 2013년부터는 1부와 2부로 나뉜 승강제가 도입됐습니다. 한국 축구의 국제 무대 성과로는 1954년 첫 월드컵 본선 진출,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4강,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등이 자주 언급됩니다.
  7. 농구를 고안한 인물과 시기로 맞는 것은? — 정답: 1891년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겨울철 실내 운동으로 고안했다. 농구는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체육 교사였던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고안했습니다. 겨울에 실내에서 할 수 있고 거칠지 않은 운동이 필요하다는 요청에서 출발했고, 복숭아 바구니를 높이 매달아 공을 넣는 방식으로 시작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초기에는 바구니 밑이 막혀 있어 공이 들어갈 때마다 꺼내야 했고, 드리블 개념도 지금과 달랐습니다. 규칙은 처음 열세 개 조항에서 출발해 계속 다듬어졌습니다. 농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것은 1936년 베를린 대회부터입니다. 참고로 스프링필드는 배구가 만들어진 홀리오크와 가까워, 두 종목이 비슷한 시기 같은 지역에서 나온 셈입니다.
  8. 배구의 탄생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1895년 미국에서 윌리엄 모건이 농구보다 덜 격렬한 운동을 목표로 고안했다. 배구는 189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홀리오크에서 체육 지도자였던 윌리엄 모건이 만들었습니다. 농구가 나온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때였는데, 농구가 격렬해 나이 든 사람들이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착안해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을 넘기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처음 붙인 이름은 지금과 달랐고, 공을 띄운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으로 바뀐 뒤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기에는 팀 인원과 서브 규칙이 지금과 달랐고 시간이 지나며 정비됐습니다.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것은 1964년 도쿄 대회부터이며, 이때 여자부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일본 대표팀이 화제가 됐습니다. 비치발리볼은 훨씬 뒤인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정식종목이 됐습니다.
  9.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처음 치러진 대회는? — 정답: 2000년 시드니 대회.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처음 치러졌습니다. 그 이전인 1988년 서울 대회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는 시범종목으로 소개됐는데, 시범종목은 정식 메달 집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두 시기를 구분해야 합니다. 서울 대회에서 시범을 보인 뒤 정식 채택까지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이후 태권도는 전자 호구 도입 등으로 판정 방식을 계속 손보며 이어지고 있고, 초창기와 달리 여러 나라가 고르게 메달을 나눠 가지는 종목이 됐습니다. 참고로 유도는 1964년 도쿄 대회에서 개최국 종목으로 처음 정식 채택됐고, 야구와 소프트볼처럼 채택과 제외를 반복한 종목도 있습니다.
  10.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한국인 선수는? — 정답: 손기정.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습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고,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모습과 국내 신문이 사진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실었다가 정간된 일장기 말소 사건이 함께 기억됩니다. 같은 대회에서 남승룡이 3위에 올랐습니다. 나머지 인물들도 한국 마라톤의 주요 이름입니다. 서윤복은 광복 후인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했고, 황영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과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등으로 오랫동안 활약했습니다.
  11. 1998년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이른바 맨발 투혼으로 알려진 골프 선수는? — 정답: 박세리. 박세리는 1998년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했습니다. 연장 승부 중 공이 물가 경사면에 걸리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 친 장면이 널리 알려져 맨발 투혼이라는 말로 회자됩니다. 외환위기 직후라는 시기와 겹치며 국내에서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이 시기에 골프를 시작한 세대를 가리켜 세리 키즈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이후 한국 여자 골프는 국제 무대에서 두꺼운 선수층을 갖추게 됐습니다. 박인비는 2013년에 메이저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고 2016년 리우 올림픽 골프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신지애와 고진영도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선수들입니다.
  12. 김연아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대회는? — 정답: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당시 쇼트와 프리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습니다. 4년 뒤 2014년 소치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땄고, 이때 판정을 둘러싼 논란이 국제적으로 크게 일었습니다. 2018년 평창 대회 때는 이미 은퇴한 뒤로 개회식 성화 최종 점화자로 나섰습니다. 한국 동계올림픽 역사에서는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쇼트트랙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고, 이후 쇼트트랙이 오랫동안 주력 종목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서는 스켈레톤과 컬링 등에서도 인상적인 성과가 나왔습니다.

세계 대회의 시작

근대 올림픽의 첫 대회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고, 부활을 주도한 인물은 프랑스의 교육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입니다. 여성 선수의 참가는 1900년 파리 대회부터입니다. 마라톤의 42.195킬로미터는 1908년 런던 대회에서 처음 쓰였고 표준으로 확정된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FIFA 월드컵의 첫 대회는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려 개최국이 우승했으며, 창설을 이끈 쥘 리메의 이름이 초기 트로피에 붙었습니다.

종목은 누가 만들었나

농구는 1891년 미국 스프링필드에서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겨울철 실내 운동으로 고안했고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것은 1936년 베를린 대회입니다. 배구는 1895년 홀리오크에서 윌리엄 모건이 농구보다 덜 격렬한 운동을 목표로 만들었으며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정식종목이 됐습니다. 태권도는 1988년 서울과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시범종목으로 소개된 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처음 치러졌습니다.

한국의 연표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고 같은 대회에서 남승룡이 3위에 올랐습니다. 국내 프로 리그는 야구가 1982년, 축구가 1983년에 시작해 한 해 차이가 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황영조가 마라톤 금메달을 땄고, 1998년 박세리의 US 여자오픈 우승이 세리 키즈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김연아의 금메달이 이어지며, 2018년 평창 대회에서는 김연아가 성화 최종 점화자로 나섰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은 어떤 것들인가요?

몇 개의 장면이 세대별로 자주 꼽힙니다. 가장 이른 것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손기정의 우승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대표로 뛰어야 했던 사정과 일장기 말소 사건이 함께 묶여 기억됩니다. 광복 이후로는 1947년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이 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나온 광복 후 첫 올림픽 금메달이 자주 언급됩니다. 1980년대에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1983년 프로축구 출범, 같은 해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4강이 이어졌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큰 분기점이 됐습니다. 1990년대에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과 1998년 박세리의 US 여자오픈 우승이 대표적입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2000년 시드니 대회의 태권도 정식종목 채택,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2010년 밴쿠버 대회 김연아의 금메달과 같은 해 남아공 월드컵의 원정 첫 16강이 꼽힙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스켈레톤 금메달과 컬링 대표팀의 활약으로 기억됩니다. 이 목록은 상징성이 큰 사례를 모은 것이라 기준에 따라 다르게 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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