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과 해설
- 세종이 젊은 학자들을 모아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맡긴 기구는? — 정답: 집현전. 집현전은 세종이 즉위 초에 확대 개편한 학문 기관으로, 정인지·신숙주·성삼문 같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훈민정음 창제와 각종 편찬 사업을 뒷받침했습니다. 규장각은 훨씬 뒤인 정조 때 설치된 왕실 도서관 겸 연구 기관이고, 홍문관은 집현전이 폐지된 뒤 그 기능을 물려받은 조선 중기의 기구입니다. 성균관은 연구소가 아니라 최고 교육기관입니다.
- 세종 때 장영실 등이 만든, 솥처럼 오목하게 파인 모양의 해시계는? — 정답: 앙부일구.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 모양의 해 그림자"라는 뜻으로, 오목한 반구 안에 눈금을 새겨 그림자로 시각과 절기를 함께 읽을 수 있게 만든 해시계입니다. 서울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해 백성이 볼 수 있게 한 점이 특히 눈에 띕니다. 같은 시기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을 재는 기구, 측우기는 강우량을 재는 도구로 용도가 각각 다릅니다.
- 이순신이 남은 배 열세 척으로 일본 수군을 막아 낸 1597년의 해전은? — 정답: 명량해전.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무너진 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진도와 육지 사이의 좁은 울돌목에서 열세 척으로 일본 함대를 상대해 물리쳤습니다. 물살이 빠르게 바뀌는 지형을 이용한 싸움이었습니다. 옥포는 임진왜란 첫 승리, 한산도는 학익진으로 유명한 1592년의 대승, 노량은 1598년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해전입니다. 이 7년의 기록을 담은 그의 일기 「난중일기」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 정약용이 수원 화성을 쌓을 때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려고 고안한 기구는? — 정답: 거중기. 거중기는 도르래를 여러 개 엮어 적은 힘으로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게 만든 장치로, 정약용이 정조의 명을 받아 설계했습니다. 실제 공사에 쓰이면서 공사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약용은 유배 기간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긴 실학의 집대성자이기도 합니다. 신기전은 조선 전기의 로켓형 화기로 그와 관련이 없습니다.
- 허준이 「동의보감」을 완성한 시기는? — 정답: 광해군 때. 「동의보감」은 선조의 명으로 편찬이 시작됐지만 전쟁으로 중단됐다가, 1610년 광해군 때 완성돼 곧 간행됐습니다. 병을 몸 전체의 균형으로 보고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로 나눠 정리한 구성이 특징이고, 약재의 우리말 이름을 함께 적어 백성이 쓰기 쉽게 한 점도 높이 평가됩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 풀과 벌레를 세밀하게 그린 「초충도」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화가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인물은? — 정답: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강릉 오죽헌에서 자라며 그림과 글씨, 시에서 모두 이름을 남겼고, 수박과 가지에 여치·나비를 곁들인 초충도가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아들 이이는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가 됐습니다. 허난설헌은 뛰어난 한시를 남긴 시인, 황진이는 시조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기녀, 김만덕은 굶주린 제주도민을 구제한 상인으로 각각 다른 인물입니다.
- 북한산의 오래된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낸, "추사체"로 유명한 조선 후기 학자는? — 정답: 김정희. 김정희는 금석문을 직접 찾아가 판독하는 방식으로 「금석과안록」을 남겼고, 무학대사비로 알려져 있던 북한산 비석이 신라 진흥왕이 세운 순수비임을 고증했습니다. 글씨에서는 옛 서체를 두루 익힌 끝에 자기만의 추사체를 이뤘고, 제주 유배 중 제자에게 그려 준 「세한도」는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문인, 정선은 진경산수의 화가입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고 자서전 「백범일지」를 남긴 인물은? — 정답: 김구. 「백범일지」는 김구가 두 아들에게 남기려 쓴 글에서 출발해 자신의 삶과 독립운동의 기록으로 이어진 자서전입니다. 그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윤봉길의 의거를 이끌었고,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광복군 창설과 대일 항전을 주도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남북 분단을 막으려 애쓰다 1949년 암살당했습니다. 안창호는 흥사단과 대성학교,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 안중근이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앞두고 쓰다 끝내 완성하지 못한 저술은? — 정답: 동양평화론. 안중근은 1909년 하얼빈역에서의 거사 뒤 뤼순 감옥에 갇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한국·중국·일본이 대등하게 협력해야 동양의 평화가 지켜진다는 구상이었지만, 일제가 약속과 달리 사형을 서둘러 집행하면서 서문과 앞부분만 남은 미완성 원고가 됐습니다. 그가 옥중에서 쓴 "국가안위 노심초사" 같은 유묵들도 함께 전해집니다. 「한국통사」는 박은식, 「조선상고사」는 신채호의 저작입니다.
- 1919년 3·1 운동 때 고향인 천안 아우내 장터의 만세 시위를 이끌었던 이화학당 학생은? — 정답: 유관순. 서울에서 만세 시위를 겪은 유관순은 학교가 문을 닫자 고향으로 내려가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이 일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갇혔고, 옥중에서도 만세를 부르다 모진 고문 끝에 1920년 열여덟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남자현은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기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윤희순은 의병가를 지어 의병을 도운 인물입니다.
-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은? — 정답: 윤동주. 윤동주는 1943년 일본에서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고, 광복을 여섯 달 앞둔 1945년 2월 그곳에서 스물일곱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사인을 두고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살아서는 시집을 내지 못했고, 친구가 보관하던 원고가 광복 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묶여 나왔습니다. 이육사도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했지만 후쿠오카가 아니라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 1984년 새해 첫날 위성으로 여러 나라를 생중계로 이은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만든 예술가는? — 정답: 백남준. 백남준은 텔레비전과 위성 방송을 예술의 재료로 끌어들인 비디오 아트의 개척자입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뉴욕과 파리 등을 위성으로 연결해 동시에 방송한 작품으로, 감시 사회를 그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그해에 "매체가 꼭 감시 도구만은 아니다"라고 답한 셈이었습니다. 이중섭·박수근·김환기는 모두 회화 쪽 화가로, 영상 작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인물과 남긴 것
세종은 집현전, 장영실은 앙부일구, 이순신은 명량과 「난중일기」, 정약용은 거중기와 「목민심서」, 허준은 1610년의 「동의보감」, 신사임당은 초충도, 김정희는 추사체와 「금석과안록」, 김구는 「백범일지」, 안중근은 「동양평화론」, 유관순은 아우내 장터,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백남준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출제 기준
「조선왕조실록」과 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인물 정보, 국가유산청의 문화유산 설명,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전해지는 일화와 기록이 엇갈리거나 학계에서 논쟁이 이어지는 부분은 문제로 내지 않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인물 문제를 잘 외우는 방법이 있나요?
사람 이름을 먼저 외우면 비슷한 인물끼리 섞이기 쉽습니다. 그가 남긴 물건이나 책 이름을 축으로 삼고 거기에 인물과 연도를 붙이는 편이 오래 갑니다. 예를 들어 앙부일구에서 장영실과 세종이, 「동의보감」에서 허준과 1610년이 함께 따라 나오는 식입니다.
전체 정답과 해설은 어디서 보나요?
결과 화면 아래 "정답과 해설" 안내에 12문제 전체의 정답과 인물별 배경 설명이 문제 순서대로 정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