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오해 퀴즈 20문제 - 나폴레옹 키, 바이킹 뿔투구, 중세 지구평면설

교과서 밖에서 굳어진 역사 상식 중에는 사료와 다른 것이 많습니다. 영화·소설·선전이 만든 대표적인 역사 오해 20가지입니다.

총 20문제, 약 5분 소요. 사료와 학계 정설에 가장 가까운 보기를 고르세요. 결과 아래 안내에 전체 정답과 배경 해설이 있습니다.

정답과 해설

  1. 나폴레옹 키 — 정답: 약 168cm로 평균 수준. 프랑스 피에(pied) 단위 기록(5피에 2푸스)이 영국식으로 오독되고 영국의 풍자화가 더해져 단신 이미지가 굳었습니다.
  2. 바이킹 뿔 투구 — 정답: 근거 없음. 바이킹 시대 투구 유물에 뿔은 없으며, 19세기 바그너 오페라 의상 등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3. 마리 앙투아네트 — 정답: 당대 기록 없음. 유사 문구는 루소의 「고백록」(그가 어린 시절)에 "어느 왕녀"의 말로 먼저 등장합니다.
  4. 중세 지구평면설 — 정답: 구형 인지. 고대 그리스 이래 학자·성직자 대부분이 구형을 전제로 논의했습니다. "중세인은 평면설을 믿었다"는 19세기에 만들어진 통념입니다.
  5. 아인슈타인 수학 — 정답: 낙제 아님. 본인도 "15세 전에 미적분을 익혔다"고 반박했습니다. 스위스 성적 체계(6점 만점) 오독이 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6. 뉴턴의 사과 — 정답: "머리에 맞음"은 각색. 지인들의 회고에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을 사색했다"는 이야기는 있으나 머리에 맞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7. 분서갱유 — 정답: 방사·술사 포함. 「사기」의 갱유 기사는 불로장생약 사기와 비방에 연루된 방사들이 발단으로, 대상과 규모의 해석에 학계 논의가 있습니다.
  8. 콜럼버스 — 정답: 크기·거리 논쟁. 당시 학자들은 구형을 전제로 콜럼버스가 지구 둘레를 너무 작게 잡았다고 반대했고, 실제로 학자들 쪽이 옳았습니다.
  9. 명량해전 — 정답: 기록상 13척. 「난중일기」·실록 등은 13척을 전하며, "신에게는 아직 12척이 있습니다"는 해전 전 장계 표현에서 유래한 숫자입니다.
  10. 에디슨 전구 — 정답: 개선·상용화. 백열전구는 이전에도 여럿 있었고(스완 등), 에디슨의 공은 오래가는 필라멘트와 발전·배전 시스템으로 실용화한 것입니다.
  11. 테르모필레 — 정답: 그리스 연합 수천 명. 개전 초기 그리스 연합군은 약 7,000명 규모였습니다. 우회로가 뚫린 뒤 대부분이 철수했고, 최후까지 남은 병력은 스파르타 300명에 테스피아이·테베 병력을 합쳐 약 1,400명 수준이었습니다. "300명뿐"은 마지막 국면을 전체로 확대한 오해입니다.
  12. 클레오파트라 — 정답: 그리스계. 알렉산드로스 사후 이집트를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손입니다.
  13. 피라미드 — 정답: 조직된 노동자. 기자에서 발굴된 노동자 마을·무덤 유적은 급여(빵·맥주)와 의료를 받은 조직 노동을 보여 줍니다. 노예 건설설은 헤로도토스와 후대 상상의 산물입니다.
  14. 워싱턴 틀니 — 정답: 상아·금속 등. 현존 틀니는 하마 상아, 금속, 사람 치아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나무 틀니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15. 피사의 사탑 실험 — 정답: 수행 여부 불확실. 제자 비비아니가 쓴 전기에만 등장하며, 갈릴레이 본인 기록에는 없습니다. 사고실험과 경사면 실험이 그의 실제 방법이었습니다.
  16. 만리장성 — 정답: 여러 왕조의 구간 총칭. 흙다짐 구간부터 명나라 벽돌 성벽까지 시대·재료가 다양하며, 관광지의 성벽 대부분은 명대 축조입니다.
  17. 아메리카 최초 도달 — 정답: 바이킹.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랑스 오 메도즈 유적으로 11세기경 노르드인 정착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됐습니다.
  18. 마녀사냥 — 정답: 16~17세기 절정. 대규모 마녀재판은 중세가 아니라 종교개혁·전쟁기의 근세 유럽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습니다.
  19. 검투사 — 정답: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경기는 드물었음. 검투사는 훈련 비용이 큰 자산이라 흥행주들이 손실을 꺼렸고, 항복과 사면 절차가 있었습니다.
  20. 바스티유 — 정답: 수감자 7명. 위조범 4명, 정신질환자 2명, 귀족 1명으로, 습격의 실제 목표는 죄수 해방보다 화약과 무기였습니다.

역사 오해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단위 오독(나폴레옹), 무대 의상(바이킹), 정치 선전(마리 앙투아네트), 후대의 극적 각색(뉴턴, 갈릴레이)처럼 오해마다 기원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깔끔하다"면 각색을 의심해 볼 만합니다.

출제 기준

학계 정설이 분명한 항목만 정답으로 삼았고, 사료 해석에 논의가 있는 항목(분서갱유의 대상, 명량 척수의 표현)은 "기록이 이렇게 남아 있다"는 수준까지만 물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12척"이 틀렸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장계는 해전 전의 표현이고, 명량해전 당시 실제 참전 판옥선은 기록상 13척(이후 1척 합류)으로 정리됩니다. 두 숫자 모두 기록에 근거가 있습니다.

정답과 해설은 어디서 확인하나요?

결과 화면 아래 "정답과 해설" 안내에 20문제 전체의 정답과 각 오해가 만들어진 배경이 문제 순서대로 정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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