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역사 퀴즈 12문제 -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해례본과 언해본, 자음 상형 원리, 모음 천지인, 아래아, 한글이라는 이름, 국문연구소, 조선어학회 사건, 한글 맞춤법 통일안, 현행 맞춤법, 가로쓰기, 한글날

세종이 만든 스물여덟 자에서 지금의 맞춤법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 봅니다.

연도와 사실 관계가 분명한 내용으로만 12문제를 꾸렸습니다. 3분이면 끝나고, 전체 정답과 해설은 결과 아래 안내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정답과 해설

  1.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 시점으로 맞는 것은? — 정답: 1443년에 글자가 만들어졌고, 1446년에 해설서와 함께 세상에 알려졌다. 실록에 따르면 세종 25년인 1443년에 새 글자가 만들어졌고, 세종 28년인 1446년에 해설과 예시를 갖춘 훈민정음이 나오면서 공식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만든 시점과 알린 시점 사이에 몇 해의 간격이 있었던 셈이며, 그사이 새 글자로 노랫말을 지어 시험해 본 용비어천가 같은 작업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글자는 자음 열일곱과 모음 열하나를 합쳐 스물여덟 자였고, 지금 쓰지 않는 넉 자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반포 이후에도 공식 문서에는 한문이 계속 쓰였기 때문에 새 글자가 곧바로 모든 자리를 대신한 것은 아닙니다.
  2.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차이로 맞는 것은? — 정답: 해례본은 글자를 만든 원리와 사용법을 한문으로 풀이한 책이고, 언해본은 그 앞부분을 우리말로 옮겨 적은 것이다. 해례본은 새 글자의 취지를 밝힌 서문과 글자의 쓰임을 정리한 부분에 더해, 만든 원리와 운용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해례가 붙어 있는 책으로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실물이 알려지지 않다가 20세기에 발견되어 글자를 만든 원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올랐습니다. 언해본은 그 가운데 서문과 글자 설명 부분을 당시 우리말로 번역해 놓은 것으로,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익숙한 대목이 여기에 실려 있습니다. 두 책은 같은 내용을 담되 언어와 범위가 다릅니다.
  3. 훈민정음 자음의 기본 글자를 만든 원리로 맞는 것은? — 정답: 소리를 낼 때의 혀와 입술, 목구멍 같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기본 글자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더해 나머지를 만들었다. 해례에는 자음의 기본 글자가 발음기관을 본떴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어금닛소리는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혓소리는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입술소리는 입의 모양을, 잇소리는 이의 모양을, 목구멍소리는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다섯 개의 기본 글자를 세운 뒤 소리가 세지는 정도에 따라 획을 하나씩 더해 나머지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글자 모양과 소리의 성질이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만든 사람과 만든 원리, 만든 시기가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자는 드물어서 이 점이 자주 언급됩니다.
  4. 훈민정음 모음의 기본 글자 셋이 나타내는 것은? — 정답: 하늘과 땅과 사람을 본떠 각각 둥근 점과 평평한 가로획, 곧게 선 세로획으로 삼았다. 모음의 기본 글자는 세 개이고 각각 하늘과 땅과 사람을 뜻합니다. 하늘은 둥글다 하여 점으로, 땅은 평평하다 하여 가로획으로, 사람은 서 있다 하여 세로획으로 나타냈습니다. 이 셋을 서로 어울려 놓아 나머지 모음을 만들었는데, 점을 가로획의 위나 아래, 세로획의 오른쪽이나 왼쪽에 붙이는 방식으로 확장했습니다. 자음이 발음기관을 본뜬 데 비해 모음은 이렇게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관념을 형상화한 점이 다릅니다. 오늘날 점은 짧은 획으로 바뀌어 쓰이고 있습니다.
  5. 아래아라고 불리는 글자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훈민정음 창제 당시 있던 모음 글자인데 소리가 점차 사라졌고, 20세기 전반에 나온 맞춤법 정리에서 표기에서도 쓰지 않기로 정해졌다. 아래아는 훈민정음의 모음 기본 글자 가운데 하나로, 둥근 점 모양으로 적던 글자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소리가 다른 모음으로 옮겨 가 실제 발음에서는 사라졌지만 표기에서는 관습적으로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쓰지 않기로 정리되면서 표준 표기에서 빠졌습니다. 지금은 제주 지역 말을 적을 때나 옛 문헌을 옮길 때, 그리고 상호나 상표에서 옛 느낌을 내려는 용도로 볼 수 있습니다. 창제 당시의 스물여덟 자 가운데 지금 쓰지 않는 넉 자에 이 글자가 포함됩니다.
  6. 한글이라는 이름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창제 당시의 이름은 훈민정음이었고, 한글이라는 이름은 20세기 초에 주시경을 비롯한 학자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굳어졌다. 세종이 붙인 이름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이었고, 줄여서 정음이라고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언문이나 암클처럼 낮잡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고, 대한제국 시기에는 나라의 글이라는 뜻으로 국문이라 했습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20세기 초에 주시경을 중심으로 한 이들이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크다와 하나라는 뜻을 담은 우리말 한에 글을 붙인 이름입니다. 이 이름이 널리 퍼지면서 학회 이름과 기념일 이름에도 쓰이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문자 자체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자리잡았습니다.
  7. 대한제국 시기에 설치된 국문연구소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1907년 학부 안에 설치되어 국문의 표기 원칙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은 기관이다. 개화기에는 신문과 교과서에 우리 글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지만 표기 방식이 사람마다 달라 혼란이 컸습니다. 이를 정리하기 위해 1907년 학부 안에 국문연구소가 설치되었고, 지석영과 주시경을 비롯한 이들이 참여해 글자의 쓰임과 표기 원칙을 논의했습니다. 여러 해에 걸친 논의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가 마련되었으나 국권 상실로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다룬 쟁점들은 이후 표기법 논의의 바탕이 되었고,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훈민정음 창제 시기의 기관과는 시대가 전혀 다릅니다.
  8. 조선어학회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일제강점기 말인 1942년에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검거되고 사전 편찬 원고가 압수된 사건이다.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사전 편찬과 맞춤법 정리를 이어 오던 단체였습니다. 일제가 우리말 사용을 억누르던 1942년, 학회 관련자들이 대거 검거되어 혹독한 취조를 받았고 옥중에서 목숨을 잃은 이도 있었습니다. 이때 오랜 세월 모아 온 사전 원고도 압수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는데, 광복 후 서울역 창고에서 원고 뭉치가 발견되면서 편찬 작업이 다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언어를 지키려는 활동이 곧바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를 보여 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며, 학회의 흐름은 이후 한글학회로 이어집니다.
  9. 1933년에 조선어학회가 발표한 것은? — 정답: 한글 맞춤법 통일안으로,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원칙을 세워 표기를 정리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그때까지 제각각이던 표기를 정리한 성과로,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원칙과 낱말의 본래 모양을 살려 적는 원칙을 함께 세운 것이 핵심입니다. 예컨대 발음만 따르면 여러 갈래로 적힐 말도 어간과 어미의 형태를 밝혀 일관되게 적도록 했습니다. 이때 아래아를 쓰지 않기로 하는 등 옛 글자의 정리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이 안은 민간 학회가 만든 것이지만 신문과 출판, 교육 현장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사실상의 표준 노릇을 했고, 오늘날 맞춤법의 뼈대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10. 지금 쓰는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1988년에 고시되어 이듬해부터 시행된 규정이 현행 기준이며, 이후 부분적인 개정이 이어지고 있다. 1933년의 통일안이 오래 기준 노릇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손볼 곳이 쌓였습니다. 이에 따라 정비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1988년에 고시되어 1989년부터 시행되었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따르는 기준입니다. 규정은 한 번 정해 두고 끝나는 것이 아니어서 이후에도 문장부호 항목이 손질되고, 그동안 틀린 것으로 보던 말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는 발표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배운 내용과 지금 기준이 다를 수 있고, 헷갈릴 때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어문 규정 안내에서 최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11. 우리 글의 세로쓰기와 가로쓰기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전통적으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 쓰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 가는 세로쓰기가 일반적이었고, 20세기를 거치며 가로쓰기로 바뀌어 신문도 1990년대에 대부분 전환했다. 한문 문화권의 오랜 관습에 따라 우리 글도 세로로 내려 쓰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 가는 방식이 오래 쓰였습니다. 그러다 숫자와 로마자를 섞어 쓸 일이 늘고 인쇄와 타자 환경이 바뀌면서 가로쓰기가 퍼졌고, 교과서를 비롯한 출판물이 먼저 옮겨 갔습니다. 신문은 상대적으로 늦게 바뀌어 1988년 창간한 한겨레신문이 가로쓰기를 앞세웠고, 주요 일간지들이 1990년대에 차례로 전환하면서 세로쓰기 지면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은 세로쓰기가 현판이나 표지 디자인처럼 특정한 용도에서 선택적으로 쓰입니다.
  12. 한글날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1926년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이후 한글날로 바뀌었고, 지금은 양력 10월 9일이며 한때 빠졌던 공휴일 지위가 2013년에 다시 부여되었다. 훈민정음 반포를 기리는 기념일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려졌고, 곧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음력 날짜를 따랐으나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의 기록을 근거로 양력 10월 9일로 정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동안 공휴일이었다가 1991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되었고, 한글의 가치를 기려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면서 2013년부터 다시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북쪽에서는 창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 1월에 기념일을 두고 있어 날짜가 다릅니다.

만든 시점과 만든 원리

훈민정음은 1443년에 만들어졌고 1446년에 해설을 갖추어 알려졌으며 처음에는 스물여덟 자였습니다. 해례본은 글자를 만든 원리를 한문으로 풀이한 책이고 언해본은 그 앞부분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자음의 기본 글자는 혀와 입술, 목구멍 같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든 뒤 소리가 세지는 정도에 따라 획을 더했고, 모음의 기본 글자 셋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각각 점과 가로획과 세로획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아래아는 소리가 먼저 사라지고 표기는 1933년의 정리에서 빠졌습니다.

이름과 규범이 정리된 시기

창제 당시 이름은 훈민정음이었고 한글이라는 이름은 20세기 초에 주시경을 비롯한 이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굳어졌습니다. 1907년 학부 안에 설치된 국문연구소는 표기 원칙을 조사하고 정리했으나 국권 상실로 시행되지 못했고, 그 논의는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으로 이어졌습니다. 통일안은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지금 맞춤법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1942년의 조선어학회 사건에서는 회원들이 검거되고 사전 원고가 압수되었는데, 광복 후 서울역 창고에서 원고가 발견되어 편찬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기준

현행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은 1988년에 고시되어 이듬해부터 시행되었고 이후에도 문장부호 손질과 복수 표준어 인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의 방향은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옮겨 갔고 신문은 1990년대를 지나며 대부분 전환했습니다. 한글날은 1926년 가갸날로 시작해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은 양력 10월 9일이며, 1991년에 공휴일에서 빠졌다가 2013년에 다시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규정은 계속 손질되므로 최신 내용은 국립국어원 자료에서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한글의 역사를 더 알아보려면 무엇부터 보면 좋을까요?

네 가지 갈래로 나눠 보면 길이 잡힙니다. 첫째는 원전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글자를 만든 원리가 직접 적혀 있는 자료라서 여기서 시작하면 이후의 설명이 훨씬 잘 이해됩니다. 원문은 한문이지만 우리말로 옮기고 풀이를 붙인 판본이 여럿 나와 있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고, 서문과 해례의 제자해 부분만 읽어도 자음과 모음을 어떻게 세웠는지가 보입니다. 둘째는 기관의 공식 자료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유물과 함께 시대별 흐름을 정리해 두었고 온라인으로도 상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현행 어문 규정의 조항과 해설, 그동안의 개정 내용을 공개하고 있어 지금의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기 좋습니다. 셋째는 시대의 배경입니다. 표기법이 흔들린 시기에는 늘 사회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개화기에 신문과 교과서가 늘면서 표기를 통일할 필요가 생겼고, 일제강점기에는 언어를 지키는 일 자체가 저항이 되었으며, 광복 이후에는 교육과 출판이 급격히 늘면서 규범 정비가 다시 요구되었습니다. 사건만 외우기보다 그 시기에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같이 보면 순서가 저절로 기억됩니다. 넷째는 지금 쓰는 말과 이어 보는 일입니다. 옛 문헌의 표기와 오늘의 표기를 나란히 놓고 어떤 글자가 사라졌고 어떤 규칙이 생겼는지 짚어 보면 역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됩니다. 다만 옛 문헌은 시기마다 표기 관습이 달라서, 인용할 때는 어느 시대 어느 문헌인지를 함께 밝혀 두는 것이 정확합니다.

전체 정답과 해설은 어디서 보나요?

결과 화면 아래 "정답과 해설" 안내에 12문제 전체의 정답과 항목별 설명이 문제 순서대로 정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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